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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 거룩한 독서)

일찍이 초기 교회는 성경을 어떻게 독서하고 묵상할지 숙고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이른바 성경의 영적 해석, 신비적 해석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주된 물음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나의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하느님을 향한 내 여정의 신비를 밝혀 주는 표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성경의 표상은 내가 하느님 앞에 어떤 모습인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내가 어찌해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이러한 영적 해석을 바탕으로 수도자들은 4세기에 ‘렉시오 디비나’, 즉 ‘성독’聖讀, ‘거룩한 독서’를 실천했습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독서, 성찰, 기도, 관상의 네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이 네 단계는 지금 우리에게도 성경 텍스트를 묵상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독서

첫째 단계는 독서입니다.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성경 텍스트를 아주 천천히 읽습니다. 여기서 내가 바라는 것은 신학 지식을 넓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그분 말씀이 내 어디를 건드리는지, 내 안에 무엇을 일으키는지 눈여겨 살핍니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에 따르면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에서 하느님 마음을 알아채는 일입니다. 요컨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무엇보다 신약성경이 매 장마다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묵상

묵상은 성경 말씀이 내 마음에 떨어지게 두는 것입니다. 나는 말씀에 대해 숙고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씹고 맛보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을 내 마음속으로 거듭 반복합니다. 이런 방법에 대해 복음사가 루카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범으로 삼습니다. 목자들이 전한 말을 듣고 난 마리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여기서 ‘곰곰이 되새기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심발로’는 원래 ‘짜 맞추다’, ‘함께 던져 넣다’, ‘이리 저리 몰두하다’라는 뜻입니다. 루카는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말씀을 더 잘 이해하려고 곰곰이 되새기는 관조적 여인을 마리아 안에서 찾아냅니다. 이로써 루카는 묵상의 본질을 설명한 것입니다.

묵상은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으로 반복하여 말씀이 내 마음에, 내 영혼의 심연에 점점 더 깊이 파고들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머리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머리는 늘 소란스럽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듣는 말씀은 금방 새 나갑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곰곰이 되새기면 하느님 말씀이 무의식에 점점 더 깊이 스며들고, 영혼의 심연도 밝아지게 합니다. 말씀은 내면을 감미롭게 합니다.

수도승 사부들은 ‘묵상’을 ‘되새김’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되씹거나 되새기면서 온몸이 감미로운 맛으로 가득 찬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맛입니다.

라틴 전통에서 ‘묵상하다’는 것은 ‘어떤 것에 머무른다’, ‘끊임없이 실행한다’는 뜻입니다. 또는 ‘중심에 다다른다’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내 중심에 이르러야 합니다. 말씀은 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 중심에 힘입어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말씀은 나를 중심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내가 그 중심의 바탕에 내 삶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

기도

렉시오 디비나의 셋째 단계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짧은 기도,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내 모든 감정과 열망으로 표현하는 기도입니다. 수도승들에 따르면 묵상 가운데 그분을 향한 갈망이 깨어납니다. 나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내 갈망을 채워 달라고 청합니다. 하느님 당신을 나에게 선사하시어, 내가 당신과 하나 되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말씀이 나를 당신 사랑으로 더 깊이 이끌어, 내가 당신 사랑의 손 위에 떨어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관상(일치)

넷째 단계는 관상입니다. 수도승들은 렉시오 디비나에서 우리가 실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앞선 세 단계뿐이라고 말합니다. 넷째 단계는 하느님의 선물,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이제는 말씀을 내려놓고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침묵으로 이끌었습니다. 말씀 안에서 몸소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관상 속에서 하느님과 맞닿아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초기 수도승들에게 신비주의란 늘 성경 신비주의를 뜻합니다. 성경을 독서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나는 깊디깊은 신비체험을 합니다. 모든 신비주의의 목표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 즉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이제는 하느님에 대해 숙고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으로 가득 채워지고, 하느님 안에서 나 자신을 잊습니다. 나 자신을 잊는 바로 그때,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르게 되고, 지금 이 순간과 온전히 하나가 되며,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가 됩니다.

‘관상하다’는 것은 원래 ‘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특정한 대상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환상을 보는 것도 아닙니다. 다름 아닌 존재의 근원을 보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은 베네딕도 성인에 대해 언급하며, 베네딕도가 한 줄기 햇살에서 온 세상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로써 교황은 관상의 본질을 설명한 것입니다. 한 번의 눈길로 한순간 모든 것을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으로 봅니다. 이것은 입에 담을 수 있는 어떤 제한된 것을 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한순간 선명해집니다. 내 삶에 대해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모근 것이 있는 그대로 좋습니다. 관상은 존재에 대한 긍정, 내 삶에 대한 긍정, 존재하는 모든 것과의 일치입니다.

관상 가운데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숙고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숙고한다면, 그 순간에는 하느님과 떨어져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관상은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로 이끌고자 합니다. 니네베의 이사악에 따르면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무언의 신비로 이르는 문을 열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은 모든 말씀 저 너머에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언의 영역, 침묵의 영역에 이르기 위해서는, 거기서 그분 안에 살며 그분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나는 침묵 속에서 내 생각과 표상을 내려놓습니다. 나 자신과 하나 되고 하느님과 하나 되어 그저 지금 여기에 머무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늘 찰나일 뿐입니다. 내가 그 찰나를 만들어 낼 수는 없으며, 오히려 선물로서 체험할 뿐입니다. 하느님 신비의 영역, 무언의 영역에서 나는 고향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고향이란 신비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신비가 깃들어 있는 곳에서만 나는 고향처럼 머무를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내 영혼이 안식에 이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편 저자가 말한 바가 실현됩니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저에게 제 영혼은 젖 뗀 아기 같습니다”(시편 131,2). 하느님 신비 안에 깃드는 것은 아기가 어머니 품에서 편히 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요 아버지이신 하느님 곁에서 보호받는 것과 같습니다.

수도승들은 렉시오 디비나 네 단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독서’는 성스러운 기쁨의 옥합을 산산이 깹니다. ‘성찰’은 깨진 옥합의 향기를 맡고 그 향기를 내면에 더 깊이 스며들게 합니다. ‘기도’는 ‘성찰’로 깨어난 갈망을 채워 달라고 하느님께 청합니다. 그리고 ‘관상’은 성스러운 기쁨, 하느님 사랑의 향기에 취합니다. 네 단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찰’이 없으면 ‘독서’는 메마릅니다. ‘독서’가 없으면 ‘성찰’은 토대를 잃고 그저 공허합니다. 그리고 ‘관상’은 ‘묵상’을 완성합니다.

- 성경 이야기 / 안셀름 그륀 / 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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